'할 포스터'에 해당되는 글 5건

  1. 스펙터클한 관중성 2010/03/08
  2. 이봐, 그게 바로 나야 2010/03/05
  3. 무책임한 용어 2010/03/04
  4. 1993b 2009/12/02
  5. Theorie der Avantgarde 2009/07/19

스펙터클한 관중성

from perhaps 2010/03/08 00:06

한 가지 결론은, 그의 건축은 빙 둘러 읽히기보다는 서로 구별되는 전면과 후면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흔히 평가되는 것과 달리) "조각 예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결론은, 게리의 작업들을 모던한 오리로 보아 구조적으로 독해하건, 포스트모던한, 장식된 창고로 보아 장식적으로 독해하건, 게리가 디자인한 건물들의 내장을 건축의 외양을 통해 독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외양 또한 내장으로부터 해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략)

게리가 실제로 고도 자본주의의, 위험을 감수하고 스펙터클 효과를 추구하는 "문화 논리"로 디자인을 하기 때문에 압제적이다.

(중략)

비슷한 방식으로 게리는 민주적이라기보다는 좀 더 배타적으로 보이는 개인성을 불러낸다. 그의 문화센터들은 "시민계약의 공론장"이라기보다는 관강객들의 탄성이나 자아내는 스펙터클한 관중성(spectatorship)의 장소에 가깝다.

(중략)

오호통재라. 그러니 기대하시라 독자 여러분. 대단한 건물이 (테러의 표적이 되는 것을 불사하며) 조만간 여러분의 고향에도 하나쯤 세워질 듯하니.







+ 잘근잘근.





2010/03/08 00:06 2010/03/08 00:06

이봐, 그게 바로 나야

from perhaps 2010/03/05 22:09

이렇게 "디자인된 주체"는 포스트모던 문화가 자랑하는 "구축된 주체"가 낳은 예기치 않은 새끼인가?

(중략)

대량생산을 하던 옛날에는, 상품은 제 스스로의 이데올로기였다. 포드의 모델-T는 스스로 제 자신의 광고였던 것이다. 그런 상품의 최대 매력은 상품의 풍부한 동질성에 있었다. 곧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게 되었다. 소비자 개념이 형성되고, 생산에 그들의 반응과 의견이 반영되었다(이것이 모던 디자인의 탄생 장면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특별한 유혹이 고안되어야 했고, 포장은 거의 상품만큼이나 중요해졌다.

(중략)

우리 시대는 이러한 질적 비약에 대한 역사적 증거물이다. 포스트포디즘의 생산체계가 자랑하는 "유연 전문화(flexible specialization)" 덕분에 상품을 지속적으로 뒤틀어 변형할 수 있고, 시장에서는 영속적으로 틈새를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의 제품은 양적으로는 대량이면서도 최신식의, 개인적이며 명확한 모습을 지닐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욕망은 단지 제품에만 등록되지 않는다. "이봐, 그게 바로 나야"라는 식의 자아-질의(self-interpellation)가 온라인과 카달로그에서 소비자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또 다른 미니미(mini-me;작은 나), 즉 상품의 프로필을 끝없이 갱신하는 일은, 오늘날의 디자인 인플레이션의 발생원인 가운데 하나다.

(중략)

동시대 디자인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자본주의의 위대한 복수-예술과 규율의 교배와 양식 위반의 반복·일상화를 보상하려는-의 일부분이다.

(중략)

아마도 지금은, 자율성과 양식 위반의 정치적 정초에 대한 감각, 그리고 규율성과 그 논쟁의 역사적 변증에 대한 감각을 회복해야할 때일 것이다. 다시금 "문화에 활동공간을 제공하기"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중략)

디자인은 전적으로 욕망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낯설게도 이 욕망은 오늘날 거의 주체를 상실하고 있거나, 혹은 최소한 결핍될 수 없는 욕망이 되고 있다. 그것은, 디자인이 새로운 나르시시즘으로 나아간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이 나르시시즘은 내면성이 없는(no interiority) 전적인 이미지이고, 주체(제)의 잠재적 사라짐에 대한, 주제(체)의 신격화다.







+ 이음새가 거의 없는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면성 없는 디자인된 주체와 그렇지 않은 주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덜컥 자율성이라니. 너무 뻔하잖아. 설득이 되려다 만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인가? (응?)





2010/03/05 22:09 2010/03/05 22:09

무책임한 용어

from perhaps 2010/03/04 20:51

포스트모더니즘은 다른 무엇보다 많은 예술가 지망생들과 다양한 대중을 위해 미술과 문화의 문호를 넓히는 일에 애를 썼다. 그러나 시브룩의 말처럼, 종국에 무엇을 성취한 걸까? 예술과 문화의 민주화? 노브라우들에 의한 예술과 문화의 병합?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 활동을 벌일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렇게 행해졌다. 시장은 예술로 넘쳐 났기에... 주요 작가들은 주목을 받기 위해서 기타를 든 신기한 헤어스타일의 꼬마들과 경쟁해야 했다." 다시, 어떤 이들은 이 설명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이 진술 자체가 이의 제기를 자초한다. 하지만 여기엔 일말의 진실도 있다. " 예술가"가 지나치게 탄력적인 범주이고, "예술"이 지나치게 무책임한 용어라는 사실 말이다.







+ 간단하게: 개나 소나. (응?)





2010/03/04 20:51 2010/03/04 20:51

1993b

from perhaps 2009/12/02 02:43

50년대와 60년대의 '네오 아방가르드'가 10년대와 20년대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다양한 어휘로 돌아간 것처럼, 90년대의 많은 미술가들이 60년대와 70년대의또 다른 패러다임으로 돌아갔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네오 아방가르드와 마찬가지로 그들 중 몇몇은 기회주의적이고 환원적이어서 과거를 그저 구경거리 정도로 전락시켰지만, 몇몇은 혁신적이고 확장적인 방식으로 과거보다 훨씬 비판적이고 적절한 것으로 다듬었다. 이런 양상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기억상실이 팽배한 시기에 소비주의에 의한 발전 없는 재활용에 굴복한 미술 문화와, 다른 미래를 펼치기 위해 다른 과거를 계속해서 재생시키려는 미술 문화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미세하지만 큰 차이.

++ 이제 몇 장 안남았구나. 같이 읽은 친구들과 책거리라도 해야겠다.






2009/12/02 02:43 2009/12/02 02:43

Theorie der Avantgarde

from perhaps 2009/07/19 01:14

아방가르드의 이론



아니. 이 책은 왜 번역이 안될까? 갸우뚱했었는데, 그래서 (당연히) 올해도 뭐 없겠지- 하고 영역본을 구했더니, 이런!

우열군이 직접 책을 꺼내 보여주고 나서야, 아니 책을 만지고 펼쳐보고 몇 글자 읽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얘기 안들었으면 한동안 영역본을 붙잡고 한 숨 쉬었을텐데, 이렇게 나와주니 뭔가 기쁘면서 이상하게 속상하군.

어쨌거나, 예술과 문화, 실재의 귀환 사이에 이 책을 놓고, 서로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온 셈이다.

궁금하다.




2009/07/19 01:14 2009/07/19 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