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과 무관심 때문에 단순화되어 있는 '돈키호테'에 대한 나의 개략적인 기억은 마치 아직 씌어지기 전의 어떤 책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와 같은 거라 할 수 있지. 일단 그러한 이미지(아무도 상식의 차원에서 부정할 수 없는)가 형성되면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세르반테스가 가졌던 문제보다 훨씬 어렵다는 게 명백해지지. 그 순종적인 나의 선구자는 우연과의 협동을 거부하지 않았지. 그는 언어와 발명의 관성에 끌려 약간 되는 대로 그 불멸의 작품을 작성해 나갔던 거지. 나는 그의 그 우발적인 작품을 문자 그대로 재작성하겠다는 신비로운 책무를 떠맡게 된 거지. 나의 이 고독한 놀이는 두 개의 극단적으로 상반된 법칙에 의해 좌우되지. 첫번째 법칙은 나로 하여금 형식적 또는 심리적 전형의 다양성들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게 되네. 두번째 법칙은, <원>텍스트를 위해 그러한 다양성들을 버리고, 전혀 반박의 여지없이 그러한 폐기를 합당한 것이라고 견지하게끔 만들어주지....... 이러한 기술적인 측면의 장벽에 또 다른-보다 원초적인-장벽이 하나 더 있다네. 17세기 초에 '돈키호테'를 쓴다는 것은 근거가 있었고, 불가피했고, 그리고 거의 운명적인 일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겠지. 그러나 20세기 초에는 사정이 다르지. 극단적이리만치 아주 복잡한 사건들로 가득 찬 300년이란 세월이 그냥 헛되이 흘러간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말이네. 그러니까 그 사건들 중 단 하나만 언급한다 해도 그것은 곧바로 '돈키호테' 그 자체가 돼버리니까 말이네.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중에서.
Trackback Address >> http://www.nugul.net/siwon/trackback/7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