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에 해당되는 글 7건

  1. 해체와 파괴 : 자크 데리다와의 대담 2010/05/15
  2. ground-less law 2009/10/24
  3. 신화적 폭력 2009/10/19
  4. 2009/10/11
  5. 동시에 2009/07/19
  6. The Three Ages of Jacques Derrida 2009/06/22
  7. 우정 2009/06/09

제 관심을 끄는 문제는 보답의 가능성 혹은 '만일' 가능하다면 교환의 굴레에 그저 새로이 기입되지 않는 그런 선물의 가능성에 관한 물음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설령 그런 가능성이 존재한다 해도, 당장 그것을 눈 앞에 보여 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단히 본질적인 이유로 인해 결국 증명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 가능성을 보여 주고자 어떤 의미화의 방법을 찾아내는 순간, 그 가능성은 이내 선물을 중립화하고 폐기하며 부정하는 교환의 경제에 다시금 기입되어 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직접 보여 주는 게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선물과 그 보답에 대한 참조는 곧 선물의 가능성 자체에 대한 '긍정'affirmation과 깊이 연관된 사유여야 합니다. 실로 긍정이야말로 해체의 본질과 원리를 구성하기 때문이죠. 바로 이것이 해체가 부정이 아닌 이유이며, 파괴destruction와도 다른 까닭입니다.








2010/05/15 00:18 2010/05/15 00:18

ground-less law

from perhaps 2009/10/24 23:04

계율은 이미 실행된 행위에 적용될 수 없으며 그것과 공약불가능하다. 행위에 대한 어떤 판단도 계율로부터 따라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행위에 대한 신의 판단도, 그리고 이 판단의 근거도 미리 파악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인간들이 다른 인간을 폭력적으로 살해하는 것에 대해 계율에 근거하여 유죄 판결을 내리는 사람들은 잘못이다. 계율은 판단의 척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고독한 상태에서 스스로 이 계율과 씨름해야 하는, 그리고 예외적인 경우들에서 이 계율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스스로 떠맡으려는 사람들이나 공동체의 행동 지침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법의 힘(자크 데리다, 진태원, 문학과 지성사)'에 실려 있는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발터 벤야민)' 중에서




+ 며칠 전 읽다 눈이 뜨거워졌다.






2009/10/24 23:04 2009/10/24 23:04

신화적 폭력

from perhaps 2009/10/19 00:01

곧 법의 정립은 수단으로서의 폭력을 통해 법으로 제정된 바로 그것을 자신의 목적으로 추구하지만, 자신이 목표로 삼는 것을 법으로 제정하려는Einsetzung 바로 그 순간 폭력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제는 엄밀한 의미에서, 더욱이 직접적으로 법을 정립적인 폭력으로 만들 뿐이다. 이는 법의 정립이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독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필연적이고 내밀하게 연루되어 있는 목적을 권력의 이름 아래 법으로 제정하기 때문이다. 법의 정립은 권력의 정립이며, 그런 한에서 폭력의 직접적인 발현 행위다. 정당성[정의]은 모든 신성한 목적 정립의 원리이며, 권력은 모든 신화적인 법정초의 원리다.



'법의 힘(자크 데리다, 진태원, 문학과 지성사)'에 실려 있는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발터 벤야민)' 중에서





2009/10/19 00:01 2009/10/19 00:01

from perhaps 2009/10/11 11:27

개인들에 맞서 폭력을 독점하려는 법의 이해관계는 법적 목적들을 보존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법 자체를 보존하려는 의도에 의해 설명된다는 놀라운 가능성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곧 법의 수중에 있지 않을 때의 폭력은 그것이 추구할 수도 있는 목적들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법의 바깥에 현존한다는 사실 자체 때문에 법을 위협한다.



'법의 힘(자크 데리다, 진태원, 문학과 지성사)'에 실려 있는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발터 벤야민)' 중에서





2009/10/11 11:27 2009/10/11 11:27

동시에

from perhaps 2009/07/19 18:45


J.K. -  기호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과학성(scientificite)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한다면 그라마톨로지는 어느 정도까지 '과학'입니까, 아니면 그것은 과학이 아닙니까? 당신은 몇몇 기호학적 작업들이 아니면 어떤 기호학적 작업이 그라마톨로지적 계획과 근접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J.D. -  그라마톨로지는 과학성의 개념과 규범들을 존재신학, 로고스중심주의, 음성주의에 연결시키는 모든 것을 해체해야 합니다. 그것은 거대하고 무한한 작업이며 과학의 고전적 계획에 대한 위반이 전-과학적 경험주의에 다시 떨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라마톨로지적 실행에 있어 일종의 이중 기제(double registre)를 전제로 합니다: 형이상학적 실증주의나 과학주의를 넘어서야 함과 동시에 과학의 실제 작업에 있어 그 기원에서부터 과학에 대한 정의와 움직임을 억압해온 형이상학적 전제들로부터 그것을 해방시키는 데 기여하는 모든 것을 강조해야 합니다. 과학적 실천에 있어 이미 늘 로고스중심적인 경계를 넘어서기 시작했던 것을 추구하고 공고히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라마톨로지가 하나의 '과학'인가를 알고자 하는 질문에 대한 단순한 대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한마디로 그것을 과학을 기입하면서 그것의 한계를 뛰어넘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그 자신의 글쓰기 속에 과학의 규범들을 자유롭고 엄격하게 기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그것은 고전적 과학성의 영역을 나타내는 경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이완시킵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그라마톨로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과학적인 기호학적 작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과학이 기호학적 담론 속에 산출해내는 그라마톨로지적 요소들을 그것의 형이상학적 전제들 반대편으로 되돌려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소쉬르의 "강의"에 나타나는 심리주의, 음성주의, 글쓰기의 배제를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거기에 나타난 형식적이고 차별적인 요소에 근거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옐름슬레우의 기능주의적 언어 분석 속에서, 소쉬르의 심리주의에 대한 비판, 표현실질에 대한 -  그러므로 음성주의에 대한 - 중화, '구조주의', '내재주의(immanentisme),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 유희의 테마 등으로부터 그 모든 결과들을 끌어내고자 한다면 그것들은 순박하게 사용된 형이상학적 개념성 일체(기표/기의의 전통 속에 놓인 표현/내용의 대립; 이전의 두 용어들 각각에 적용되는 형태/실질의 대립; '경험적 원리' 등과 같은)를 배제해야 합니다. 기호학적 탐구의 모든 명제나 체계에 있어서 - 그리고 나보다는 당신이 보다 현실적인 예들을 인용할 수 있을텐데요 - 형이상학적 전제들과 비판적 동기들은 함께 섞여 있다고 '선험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점은 형이상학적 전제와 비판적 동기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동일한 언어행위 혹은 차라리 동일한 언어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그라마톨로지는 틀림없이 또다른 과학이라거나 새로운 내용과 제한된 새로운 영역을 지닌 새로운 학제라기보다는 이러한 텍스트 분할(partage textual)의 세심한 실천일 것입니다.



'기호학과 그라마톨로지 - 쥴리아 크리스테바와의 대담' 중에서

입장들 / 자끄 데리다 / 박성창 편역 / 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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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글씨체로 찍혀진 드러냄이완시킵니다 사이에.








2009/07/19 18:45 2009/07/19 18:45


What's important to you today?

How can I answer such a question? Many things private, public and political are important to me, but I think of all these things with a constant awareness that I'm aging, I'm going to die, and life is short. I'm constantly attentive to the time left to me, and although I've been inclined this way since I was young, it becomes more serious when you reach 72. So far I haven't made my peace with the inevitability of death, and I doubt I ever will, and this awareness permeates everything I think. It's terrible what's going on in the world, and all these things are on my mind, but they exist alongside this terror of my own death.


At what point did you become an adult?

This is an intriguing question. I've always believed everyone has more than one age, and I carry three ages within myself. When I was 20 I felt old and wise, but now I feel like a child. There's an element of melancholy to this, because although I feel young in my heart, I know objectively that I'm not young. The second age I carry is my real age of 72, and every day I'm confronted with signs that remind me of it. The third age I carry -- and this is something I only feel in France -- is the age I was when I began to publish, which was 35. It's as if I stopped at 35 in the cultural world where I work. Of course that's not true, because in many circles I'm considered an old, well-known professor who's published a lot. Nonetheless, I feel as though I'm a young writer who just started publishing, and people are saying, "Well, he's promising."



The Three Ages of Jacques Derrida





2009/06/22 12:42 2009/06/22 12:42

우정

from perhaps 2009/06/09 15:58






" O My Freiends, There Is No Friend "







2009/06/09 15:58 2009/06/09 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