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본 뒤 짧게라도 글 남기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 중인데 조금 귀찮..(응?) 여튼 그간 본 전시들.
1.
최원준씨의 그간 작업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익숙하다. 이런 접근. 익숙한게 나쁜 건 아니지. 다만 좀 더 나아갈 수 없을까. 하는 욕심이 (내가) 든다.(응?) 거칠게 말하면 (나름) 민족지적 접근인데 거리가 좀 있다. 소재에 함몰될 수도 있고. 전시에 맞춰 '시선의 지정학'이라는 사진집이 나왔다던데 어떨지 궁금.
최원준씨 전시 오프닝과 황세준 작가 전시도 오프닝이어서, 대안공간 풀과 인연이 있는 작가들 여럿이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왔다 갔다. 이런 풍경은 묘한 기분을 들게 한다.
2.
꽤 오래 봤다.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글도, 작업도 재밌게 봤다. 그런데 기억이 잘 안난다.(먼산) 그래도 눈을 잡아 끈 두 가지. 하나는 '막다른 길'이란 그림.(제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음) 그림은 그냥 막다른 길, 그런데 영어 제목이 'A Painting'. 또 하나는 사람들이 슬슬 뒷풀이 장소로 빠지고 전시장에 4-5명 있었을 때, 슬쩍 나가 쪼그려 앉아서 담뱃불 붙이는 작가의 모습. 전시와 작업에 대한 인상이 남지 않은 이유가 그 모습 때문일까?
3.
예상대로 좋지 않다.(응?) 작업을 보는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범죄'에 대한 전시일뿐. '범죄를 통해 사회의 단면'을 보는(말하는) 전시는 아니다. 물론 '범죄에 대한' 전시(작업)에서 사회의 단면을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역할은 보는 이의 몫이지 작가나 기획자의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기획의 문제. 작가와 작업이 변수라면 전시 개념을 가진 기획자가 잘 끌고 갔어야 하지 않을까. 개별 작업들에 대해서는 많으니까 그냥.. (먼산)
갤러리 루프 홈페이지에 '죄악의 시대' 전시 포스팅이 없다. 전부터 외부 기획 전시는 올리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4.
음. 우선 전시로 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달라질 듯. 차와 디저트를 시켜놓고 3시간 넘게 앉아 글을 읽었는데 허탈하다. 결국 다 읽지는 않았다.(고 쓰고 '못했다.'라고 읽는다.) 전시가 아니라고 생각해도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는.. (응?) 그냥 읽던 책 읽을껄..
테이크아웃드로잉, 커피도 비싸고 디저트도 비싸다. 헐퀴
5.
'SOS'는 일단 프로덕션 차원에서 헐. 한강을 중심으로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시도나 아이디어는 많지 않을까. 하지만 이를 실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 여러 차원에서 쉬어 보이지 않는데 임민욱 작가 정도 되니까 가능해지는 듯. 여튼 잘 만들었고, 러닝타임 끝까지 다 보게 되고, 내용도 일정 수준에서 끄덕. 하지만 프로덕션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비교했을 때는) 조금 아쉽기도. 직접 유람선을 타고 관람했다면 어땠을까. 쨌든 작가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기분으로 작업했을 듯.(부럽) 파트타임스위트의 '루프더루프'는 텍스트나 사진자료로 봤을 때 만큼 흥미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들에 대한 관심은 가지고 갈 듯. '오프오프스테이지'를 못 본게 아쉽다. 레퍼런스를 양식화하지 않으며 어떻게 드러내고/전유할 것인가. 유토피아적 제스처를 어떻게 좀 더 미적/정치적으로 작동시킬 것인가. 이런 것들이 관건일 듯. (근데 이건 파트타임스위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잖아.)
작업들 사이의 균형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지만 'SOS'가 다른 작업들을 잡아 먹는 듯. 전시와 전시명의 거리는 좀 있어 보이고, 서문도 불편하다. 특히 '88만원 세대'를 끌어 쓰는 것은 불만. 툴툴.
+ 작가, 평론/비평가, 기획자, 이론가, 사가는 다르다. 아무리 서로가 겹쳐질 수 있다고 해도, 이 미세한 경계들은 생각보다 많은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 경계 위를, 차이들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비전과 형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먼산)
+ 하긴 어떤 분은 독립 큐레이터에, 대표에, 컬렉터에, 교수에, 총감독에, 등, 등이기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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