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haps'에 해당되는 글 71건

  1. 스펙터클한 관중성 2010/03/08
  2. 이봐, 그게 바로 나야 2010/03/05
  3. 무책임한 용어 2010/03/04
  4. 잠언과 간주곡 2010/02/06
  5.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생성하는 멜랑콜리 2010/02/05
  6. 간결하게 혹은 명료하게 (2) 2010/01/21
  7. 오 전시들 2010/01/17
  8. 죄악의 시대 2010/01/03
  9. 학생 2009/12/03
  10. 1993b 2009/12/02

스펙터클한 관중성

from perhaps 2010/03/08 00:06

한 가지 결론은, 그의 건축은 빙 둘러 읽히기보다는 서로 구별되는 전면과 후면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흔히 평가되는 것과 달리) "조각 예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결론은, 게리의 작업들을 모던한 오리로 보아 구조적으로 독해하건, 포스트모던한, 장식된 창고로 보아 장식적으로 독해하건, 게리가 디자인한 건물들의 내장을 건축의 외양을 통해 독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외양 또한 내장으로부터 해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략)

게리가 실제로 고도 자본주의의, 위험을 감수하고 스펙터클 효과를 추구하는 "문화 논리"로 디자인을 하기 때문에 압제적이다.

(중략)

비슷한 방식으로 게리는 민주적이라기보다는 좀 더 배타적으로 보이는 개인성을 불러낸다. 그의 문화센터들은 "시민계약의 공론장"이라기보다는 관강객들의 탄성이나 자아내는 스펙터클한 관중성(spectatorship)의 장소에 가깝다.

(중략)

오호통재라. 그러니 기대하시라 독자 여러분. 대단한 건물이 (테러의 표적이 되는 것을 불사하며) 조만간 여러분의 고향에도 하나쯤 세워질 듯하니.







+ 잘근잘근 프랭크 게리 잘근잘근. 그나저나 하나쯤 세워지려나.....(먼산)





2010/03/08 00:06 2010/03/08 00:06

이봐, 그게 바로 나야

from perhaps 2010/03/05 22:09

이렇게 "디자인된 주체"는 포스트모던 문화가 자랑하는 "구축된 주체"가 낳은 예기치 않은 새끼인가?

(중략)

대량생산을 하던 옛날에는, 상품은 제 스스로의 이데올로기였다. 포드의 모델-T는 스스로 제 자신의 광고였던 것이다. 그런 상품의 최대 매력은 상품의 풍부한 동질성에 있었다. 곧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게 되었다. 소비자 개념이 형성되고, 생산에 그들의 반응과 의견이 반영되었다(이것이 모던 디자인의 탄생 장면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특별한 유혹이 고안되어야 했고, 포장은 거의 상품만큼이나 중요해졌다.

(중략)

우리 시대는 이러한 질적 비약에 대한 역사적 증거물이다. 포스트포디즘의 생산체계가 자랑하는 "유연 전문화(flexible specialization)" 덕분에 상품을 지속적으로 뒤틀어 변형할 수 있고, 시장에서는 영속적으로 틈새를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의 제품은 양적으로는 대량이면서도 최신식의, 개인적이며 명확한 모습을 지닐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욕망은 단지 제품에만 등록되지 않는다. "이봐, 그게 바로 나야"라는 식의 자아-질의(self-interpellation)가 온라인과 카달로그에서 소비자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또 다른 미니미(mini-me;작은 나), 즉 상품의 프로필을 끝없이 갱신하는 일은, 오늘날의 디자인 인플레이션의 발생원인 가운데 하나다.

(중략)

동시대 디자인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자본주의의 위대한 복수-예술과 규율의 교배와 양식 위반의 반복·일상화를 보상하려는-의 일부분이다.

(중략)

아마도 지금은, 자율성과 양식 위반의 정치적 정초에 대한 감각, 그리고 규율성과 그 논쟁의 역사적 변증에 대한 감각을 회복해야할 때일 것이다. 다시금 "문화에 활동공간을 제공하기"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중략)

디자인은 전적으로 욕망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낯설게도 이 욕망은 오늘날 거의 주체를 상실하고 있거나, 혹은 최소한 결핍될 수 없는 욕망이 되고 있다. 그것은, 디자인이 새로운 나르시시즘으로 나아간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이 나르시시즘은 내면성이 없는(no interiority) 전적인 이미지이고, 주체(제)의 잠재적 사라짐에 대한, 주제(체)의 신격화다.







+ 이음새가 거의 없는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면성 없는 디자인된 주체와 그렇지 않은 주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덜컥 자율성이라니. 너무 뻔하잖아. 설득이 되려다 만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인가? (응?)





2010/03/05 22:09 2010/03/05 22:09

무책임한 용어

from perhaps 2010/03/04 20:51

포스트모더니즘은 다른 무엇보다 많은 예술가 지망생들과 다양한 대중을 위해 미술과 문화의 문호를 넓히는 일에 애를 썼다. 그러나 시브룩의 말처럼, 종국에 무엇을 성취한 걸까? 예술과 문화의 민주화? 노브라우들에 의한 예술과 문화의 병합?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 활동을 벌일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렇게 행해졌다. 시장은 예술로 넘쳐 났기에... 주요 작가들은 주목을 받기 위해서 기타를 든 신기한 헤어스타일의 꼬마들과 경쟁해야 했다." 다시, 어떤 이들은 이 설명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이 진술 자체가 이의 제기를 자초한다. 하지만 여기엔 일말의 진실도 있다. " 예술가"가 지나치게 탄력적인 범주이고, "예술"이 지나치게 무책임한 용어라는 사실 말이다.







+ 간단하게: 개나 소나. (응?)





2010/03/04 20:51 2010/03/04 20:51

잠언과 간주곡

from perhaps 2010/02/06 17:54

65.
인식에 이르는 길 위에서 그렇게 많은 부끄러움을 극복할 수 없다면, 인식의 매력은 적을 것이다.

68.
내 기억은 "이것을 내가 했다"고 말한다. 내가 그러한 것을 했을리 없다고 내 자부심은 말하며 냉정해진다. 결국-기억이 양보한다.

77.
사람들은 자신의 원칙을 가지고 자신의 습관을 제압하거나 정당화하거나 존중하거나 비난하거나 은폐하려고 한다: - 이 때문에 똑같은 원칙을 가진 두 사람은 아마 결국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바라게 될 것이다.

81.
바다 한가운데서 갈증이 나 죽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그대들은 자신의 진리가 한 번도 갈증을 해소시킬 수 없을 정도로 바로 소금에 절여야만 하는가?

89.
무서운 체험은 그것을 체험한 사람이 무서운 존재는 아닌지 추측하게 한다.

95.
스스로 자신의 부도덕함을 부끄러워하는 것 : 이는 마지막에는 자신의 도덕성도 부끄러워하게 되는 층계의 첫 계단이다.

111.
실로 우리의 자부심이 상처 입었을 때, 바로 이때 우리의 허영심은 가장 심하게 상처를 받을 수 있다.

116.
우리 인생의 위대한 시기는 우리가 우리의 악을 우리의 최선이라고 고쳐 부를 용기를 얻는 그때이다.

117.
정동(情動)을 극복하는 의지는 결국 다른 또 하나 또는 몇 개의 다른 정동의 의지일 뿐이다.

128.
네가 가르치려고 하는 진리가 추상적이면 추상적일수록, 너는 감각을 더욱더 그 진리 쪽으로 유혹해야만 한다.

130.
어떤 사람의 존재는 그의 재능이 시들어갈 때, 즉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제시하지 못하게 될 때 그러나기 시작한다. 재능이란 화장(化粧)이기도 하다. 화장이란 또한 일종의 은폐이다.

133.
자신의 이상에 이르는 길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은, 이상을 지니지 않은 인간보다 더 경박하고 파렴치하게 살아간다.

138.
우리는 깨어 있을 때도 꿈속에서와 같은 일을 한다 : 즉 우리는 우리와 교제하는 인간을 먼저 고안해내고 꾸며내고,-그러고는 곧 그것을 잊어버린다.

144.
한 여성이 학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을 때, 그녀에게 성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불임이라는 것은 이미 어떤 유의 남성적 취향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 남성은, 실례되는 말이지만, '불임의 동물'이다.

146.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이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네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네 안으로 들어가 너를 들여다본다.

152.
"인식의 나무가 있는 곳에는 항상 낙원이 있다" : 태고의 뱀도 가장 최근의 뱀도 이렇게 말한다.

153.
사랑으로 행해지는 것은 항상 선악의 저편에서 일어난다.

154.
이의(異議), 탈선, 즐거운 불신, 조롱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건강의 징조이다 : 무조건적인 것은 모두 병리학의 대상이 된다.

156.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문 일이다.-그러나 집단, 당파, 민족, 시대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다.

166.
사람들은 입으로 거짓말을 잘도 한다. 그러나 이때 사람들은 거짓말하는 입으로 진실을 말하기도 한다.

169.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를 숨기는 수단의 한 가지가 될 수도 있다.

175.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사랑하는 것이지, 욕망한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177.
'진실'이란 것에 대해서는 아마 아직 그 누구도 충분히 진실하지 못했을 것이다.

184.
악의처럼 드러나는 오만한 선이 있다.










2010/02/06 17:54 2010/02/06 17:54

1.
2월의 첫 책. 이리저리 오가며 꾸역꾸역 읽었는데......(먼산)

2.
어쨌든 30대 젊은 작가를 두루 살피고 알리겠다는 의도로 책이 나오는 것은 대단한 일. 작년 베니스비엔날레와 올 여름 아트선재의 개인전이 크게 작용했다고 해도 한국 미술계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또 생길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헐퀴.

3.
자연스레 궁금증은 '이 작가가 그만큼 좋은 작업을 하는가?'와 '이 책은 우리가 작가의 작업과 세계관에 들어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가?' 일 듯. 첫 번째 물음에는 일단 보류. 당연한 일. 책이 작업을 대신할 수 없을테니까. 물론 가늠하고 상상할 수는 있겠지만 구태여 앞서 나갈 필요도 없다. 곧 접할 수 있을텐데. 두 번째 질문에는 아니오.

4.
글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작가의 말을 필요 이상 인용하는 것도 보기 안 좋고, 특히 구체적인 설명/논증없이 슬쩍 넘어가는 것은 좀 심하다 싶다. 작가의 작업이 많은 레이어와 다양한 레퍼런스를 가지고 있다면, 글은 더 정교하고 풍부하게 접근해야 할 텐데. 외려 작가와 작업으로 들어서는 길을 어지럽힌다.

5.
그나마 흥미롭게 읽은 몇몇 글 모두 작가의 것(응?)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블랑쇼를 위시한 문학/철학가들의 영향이 보인다. 때문에 글만으로 얘기하자면, 그들의 글을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먼산)


그러니까, 어쨌든, 바로 이 책.


+ 작가에게 특별한 애정이 없다면 도서관에서 보는 것이.(응?)




2010/02/05 15:51 2010/02/05 15:51

......
아직도 많은 이들은 문장을 길게 늘여 빼서 쓰는 습관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길게 써야 문장의 품격이 높아진다는 그릇된 인식이 큰 몫을 차지한다. 특히 법률 관련 문건들의 경우는 대단히 심각하다. 하지만 문장의 권위는 길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둘째, 모양이나 뜻이 같은 말을 겹쳐 사용하기 때문이다. (중략) 전달하려는 뜻을 힘주어 강조하거나 멋스럽게 표현하느라고 문장을 길게 늘여 쓴 예인데 이는 반드시 버려야 할 습관이다.

셋째,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생각이나 사실을 마구 늘어놓기 때문이다. (중략) 떠오르는 생각을 정돈하지 않고 쓰면 문장이 길어진다. 주어와 서술어가 뒤죽박죽인 비문이 되기도 쉽다.









+ 정보전달의 측면에서 다룬 책이다. 예가 많고 내용도 쉽다. 이동하면서 읽기에 좋다. 가격도 저렴하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면 더 좋을 듯. (응?)

+ 물론,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먼산)





2010/01/21 19:31 2010/01/21 19:31

오 전시들

from perhaps 2010/01/17 17:05

전시 본 뒤 짧게라도 글 남기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 중인데 조금 귀찮..(응?) 여튼 그간 본 전시들.


1.

최원준씨의 그간 작업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익숙하다. 이런 접근. 익숙한게 나쁜 건 아니지. 다만 좀 더 나아갈 수 없을까. 하는 욕심이 (내가) 든다.(응?) 거칠게 말하면 (나름) 민족지적 접근인데 거리가 좀 있다. 소재에 함몰될 수도 있고. 전시에 맞춰 '시선의 지정학'이라는 사진집이 나왔다던데 어떨지 궁금.

최원준씨 전시 오프닝과 황세준 작가 전시도 오프닝이어서, 대안공간 풀과 인연이 있는 작가들 여럿이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왔다 갔다. 이런 풍경은 묘한 기분을 들게 한다.

그나저나 인미공 홈페이지는 어떻게 된거지? 작년 말까지도 멀쩡했었는데. (다시 복구됐다는)


2.

꽤 오래 봤다.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글도, 작업도 재밌게 봤다. 그런데 기억이 잘 안난다.(먼산) 그래도 눈을 잡아 끈 두 가지. 하나는 '막다른 길'이란 그림.(제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음)  그림은 그냥 막다른 길, 그런데 영어 제목이 'A Painting'. 또 하나는 사람들이 슬슬 뒷풀이 장소로 빠지고 전시장에 4-5명 있었을 때, 슬쩍 나가 쪼그려 앉아서 담뱃불 붙이는 작가의 모습. 전시와 작업에 대한 인상이 남지 않은 이유가 그 모습 때문일까?


3.

예상대로 좋지 않다.(응?) 작업을 보는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범죄'에 대한 전시일뿐. '범죄를 통해 사회의 단면'을 보는(말하는) 전시는 아니다. 물론 '범죄에 대한' 전시(작업)에서 사회의 단면을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역할은 보는 이의 몫이지 작가나 기획자의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기획의 문제. 작가와 작업이 변수라면 전시 개념을 가진 기획자가 잘 끌고 갔어야 하지 않을까. 개별 작업들에 대해서는 많으니까 그냥.. (먼산)

갤러리 루프 홈페이지에 '죄악의 시대' 전시 포스팅이 없다. 전부터 외부 기획 전시는 올리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4.

음. 우선 전시로 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달라질 듯. 차와 디저트를 시켜놓고 3시간 넘게 앉아 글을 읽었는데 허탈하다. 결국 다 읽지는 않았다.(고 쓰고 '못했다.'라고 읽는다.) 전시가 아니라고 생각해도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는.. (응?) 그냥 읽던 책 읽을껄..

테이크아웃드로잉, 커피도 비싸고 디저트도 비싸다. 헐퀴


5.

'SOS'는 일단 프로덕션 차원에서 헐. 한강을 중심으로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시도나 아이디어는 많지 않을까. 하지만 이를 실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 여러 차원에서 쉬어 보이지 않는데 임민욱 작가 정도 되니까 가능해지는 듯. 여튼 잘 만들었고, 러닝타임 끝까지 다 보게 되고, 내용도 일정 수준에서 끄덕. 하지만 프로덕션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비교했을 때는) 조금 아쉽기도. 직접 유람선을 타고 관람했다면 어땠을까. 쨌든 작가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기분으로 작업했을 듯.(부럽) 파트타임스위트의 '루프더루프'는 텍스트나 사진자료로 봤을 때 만큼 흥미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들에 대한 관심은 가지고 갈 듯. '오프오프스테이지'를 못 본게 아쉽다. 레퍼런스를 양식화하지 않으며 어떻게 드러내고/전유할 것인가. 유토피아적 제스처를 어떻게 좀 더 미적/정치적으로 작동시킬 것인가. 이런 것들이 관건일 듯. (근데 이건 파트타임스위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잖아.)

작업들 사이의 균형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지만 'SOS'가 다른 작업들을 잡아 먹는 듯. 전시와 전시명의 거리는 좀 있어 보이고, 서문도 불편하다. 특히 '88만원 세대'를 끌어 쓰는 것은 불만. 툴툴.




+ 작가, 평론/비평가, 기획자, 이론가, 사가는 다르다. 아무리 서로가 겹쳐질 수 있다고 해도, 이 미세한 경계들은 생각보다 많은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 경계 위를, 차이들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비전과 형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먼산)

+ 하긴 어떤 분은 독립 큐레이터에, 대표에, 컬렉터에, 교수에, 총감독에, 등, 등이기도 하니..





2010/01/17 17:05 2010/01/17 17:05

죄악의 시대

from perhaps 2010/01/03 16:18



참여작가 : 강홍구, 노순택, 노충현, 설운, 박정원, 이성희, 이재헌, 정윤석
연구자 : 김상우, 노명우, 박상우, 박순영, 박영욱, 신영희, 이정훈, 허강


공동주관 : 대안공간 루프
기획 : 김상우

초대일시 : 2010_0105 화요일 6 pm
전시일시 : 2010_0105 ▶ 0131
관람시간 : 11:00 am - 08:00 pm



+ 기획의 노림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위험해지거나 뻔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2010/01/03 16:18 2010/01/03 16:18

학생

from perhaps 2009/12/03 22:11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제 분야에서 영원히 겸손한 학생이어야 한다. 보조금, 연구비, 결국은 알량한 교직에 매달려 줄 서는 "평생 학생"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한편, 분야를 "읽고", 이론이나 비평에 뚜렷이 기여하는 진지한 한구파 학생도 그들과 구별해야 한다. 결국, 내가 말하는 "학생"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꾸준히 질문하는 사람을 뜻한다.








+ 참 흔한 말인데, 이런 자세 흔히 볼 수 없다.






2009/12/03 22:11 2009/12/03 22:11

1993b

from perhaps 2009/12/02 02:43

50년대와 60년대의 '네오 아방가르드'가 10년대와 20년대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다양한 어휘로 돌아간 것처럼, 90년대의 많은 미술가들이 60년대와 70년대의또 다른 패러다임으로 돌아갔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네오 아방가르드와 마찬가지로 그들 중 몇몇은 기회주의적이고 환원적이어서 과거를 그저 구경거리 정도로 전락시켰지만, 몇몇은 혁신적이고 확장적인 방식으로 과거보다 훨씬 비판적이고 적절한 것으로 다듬었다. 이런 양상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기억상실이 팽배한 시기에 소비주의에 의한 발전 없는 재활용에 굴복한 미술 문화와, 다른 미래를 펼치기 위해 다른 과거를 계속해서 재생시키려는 미술 문화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미세하지만 큰 차이.

++ 이제 몇 장 안남았구나. 같이 읽은 친구들과 책거리라도 해야겠다.






2009/12/02 02:43 2009/12/02 02:43